나의 삶 나의 길/ 맛집

한번 가봐야 겠네요.

밝은창 2010. 5. 27. 12:07

"밥에다 반찬이 7가지나" 칼국수집 맞나요

메밀꽃은 하얗다. 메밀꽃이 하얗게 핀 달밤에 개울가 물레방앗간에서 어떤 처녀와 밤을 하얗게 새운 장돌뱅이가 있었다. 이제는 장돌뱅이도, 물레방앗간도, 메밀도 다 사라져간다. "메밀묵 사∼려"를 외치는 소리도 가물가물해졌다. 부산 동구 초량동 '정가네 메밀칼국수'에서 사라져가던 메밀을 만났다. 나이 든 장돌뱅이가 예전에 알던 어떤 처녀를 만난 것만큼이나 반갑다. 메밀은 성질이 차다. 열을 내리고 염증을 가라앉힌다. 무더운 여름이나 체질적으로 열과 습기가 많은 사람이 먹으면 몸이 가볍고 기운이 난다.

이덕근 대표(부인 정명숙 씨의 성이 정 씨이다)의 부친은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방앗간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국수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숱하게 보았단다. 메밀이 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강원도 봉평까지 가서 메밀가루를 구해왔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메밀칼국수가 탄생했다.

메밀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는데 밥에다 반찬이 7가지나 딸려 나온다. 나물, 콩자반, 호박무침, 김치, 무채 등 반찬이 하나같이 깔끔하다. 메밀묵은 뽀얀데 메밀국수는 까무잡잡하다. 메밀 껍질까지 같이 볶아서 이런 색깔이 나왔단다. 육수는 심심한 듯 몸에 좋은 느낌이다. 고기 종류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면은 다 먹을 때까지도 퍼지지 않는다.

심심한 게 섭섭하다면 해물메밀칼국수를 권한다. 홍합과 바지락이 들어 진한 맛이 우러나온다. 보기에도, 먹기에도 푸짐하다. 밥은 달라면 무한정으로 준다. 해물메밀칼국수를 먹고 난 뒤 밥을 말아 먹으면 꼭 보약을 먹는 느낌이란다. 이렇게 팔아서 남을까. 손님들이 많이 오면 된단다. 7월부터는 냉메밀칼국수를 한다. 이걸 먹고 등줄기의 땀이 식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 오장육부까지 시원하다니 여름이 오면 꼭 한번 먹어줘야겠다.

이 대표는 직장에도 다니고, 퇴근해서는 면을 만들고, 일요일에는 농사도 짓는다. 참 열심히 사는 그의 지론이다. "운동해서 나오는 땀은 달고, 일해서 나오는 땀은 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똑같다. 일을 하면 뭐라도 생긴다. 남을 도와주면 인심이라도 얻는다." 메밀칼국수 4천 원, 해물칼국수 5천 원. 영업시간은 오전 9시 30분∼오후 9시 30분. 일요일에는 쉰다. 지하철 초량역 12번 출구. YWCA 여성회관 뒤편. 051-441-8897.

·몸이 좋아하는 사골 칼국수 '가락정'


뽀얀 우윳빛 국물에 속이 확 풀려요

사골(四骨)은 소의 네 다리뼈를 말한다. 사전을 보면 '사골은 주로 몸을 보신하는 데 쓴다'고 딱 부러지게 나와 있다. 사골 곰탕을 며칠 먹어주면 지친 몸이 기지개를 편다. 사골 곰탕이 부담스럽다? 밥 대신 국수를 넣으면 더 편안해진다. 사하구의 '가락정'은 흔치 않은 사골 칼국수집이다. 바로 맞은편에 가락타운이 있어서, 또 '국수 가락'이라는 뜻도 지녔다.

가락정에 들어선 시간이 오후 2시 30분. 정신없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직접 칼국수 반죽을 빚는 시간이다. 찰지고 쫄깃한 칼국수 가락의 비결은 여기에 있다. 일단 유명한 사골 칼국수부터 후루룩. 국물 색깔부터가 뽀얀 우윳빛으로 다르다. 은근한 사골 국물이 속을 부드럽게 다스려준다. 양념은 넣어도, 넣지 않아도 좋다. 사골 국물을 좀 더 달라고 청했다. 속이 잘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 같다. 24시간 고아낸 사골의 힘이다. 사골 칼국수에는 김치도 중요하다. 이 집 김치에는 그냥 퍼부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양념이 가득 들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보쌈도 남다르다. 상추에 떡피, 고기, 야채를 올려놓고 먹는 일명 '떡보쌈'이다. 냉동된 떡이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 독특하다. 보쌈 또는 큼직한 녹두빈대떡과 함께 술 한 잔 가볍게 하기에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래서 신평공단 쪽에서 오는 단골들이 많단다.

미대를 졸업한 정남규 대표는 지난 1993년부터 시작해서 올해로 이 자리에서 18년 째를 맞이했다. 미술학원을 할까 고민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음식점에 끌렸단다. 한때 허심청 앞에 분점을 내서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무래도 올해는 정 대표에게 전기가 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후쿠오카의 한 음식점에서 칼국수를 받아서 해보겠다며 국수와 사골을 농축해 보내달라고 요청이 왔다. 자신감을 얻은 정 대표는 오는 8월 후쿠오카에 칼국수, 막걸리, 빈대떡을 파는 가락정의 시범점포를 낼 계획이다. 한식 세계화의 일선에 나서는 셈이다. 분위기도 화기애애하다. 종업원 중에 7∼8년은 기본, 14년을 같이 한 분도 있단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먹어야 더 맛이 있다. 사골 칼국수, 얼큰이 칼국수, 녹두빈대떡, 손만두 모두 5천 원. 보쌈 소 2만 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11시. 사하구 하단동 가락타운 102동 앞. 051-208-8585.


·엄마의 마음이 깃든 수제비 '늘 같은 마음'


씹을수록 추억 새록… 들깨로 고소한 맛

수제비에 대한 추억을 한 단어로 묘사하면 '가난'이다. 밥 대신에 지겹도록 먹어 아직도 수제비만 보면 신물이 올라와서 못 먹는다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가난했던 '수제비 소녀'에서 '시대의 연인'이 되었다 물수제비처럼 사라진 국민 여배우도 있다. 수제비는 씹을수록 추억이 씹힌다.

금정구 청룡동의 '늘 같은 마음'을 찾아갔다. 가던 날 마침 비가 많이 내렸다. 수제비는 왜 비오는 날 더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 집은 수제비와 어울리게 한국 전통 스타일로 편안하게 꾸며놓았다. 가게 이름이 마음에 든다. 이순명 대표는 음식에 대해서는 절대로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름을 지었단다. 이 대표는 언양에서 6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지금은 음식 솜씨가 좋았던 엄마를 생각하며 수제비를 만들고 있다. 수제비에는 엄마의 마음이 들었다. 수제비에는 들깨가 그득해서 고소하다. 유별난 맛이 아니라 은은한 맛이 난다. 이런 게 좋아지는 걸 보면 나이가 든 걸까.

반찬은 소박하다. 오이무침과 오이·고추지 뿐이다. 좋은 간장을 사용해 직접 담은 거라 맛이 있다. 그날 그날 생각나는 대로 반찬을 만들어 매일 바뀐다. 나물이 좋으면 나물을 하는 식이다. 반찬의 가짓수가 적지만 남아 나가는 게 절대 없다.

수제비 색깔은 뿌연 이날 하늘을 닮았다. 수제비만 먹기가 아쉽다면 콩나물무비빔밥이나 알밥도 괜찮다. 따라 나오는 국물이 수제비이다. 알밥은 여자들이 좋아한다. 깨에 버무린 날치 알이 입 안에서 날아오르며 오도독 하고 씹힌다. 알밥에는 새싹채소를 비롯해 10여 가지가 들었다. 예전에 많이 먹던 콩나물무비빔밥도 반갑다. 양념간장을 넣어도 좋고 넣지 않아도 좋다. 돌솥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몸에 좋은, 튀지 않는 음식들이다. 아기부터 노인까지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집이다. 아이를 가졌을 때 한 번 먹었는데 3살 된 아이가 자꾸 수제비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신기해하는 단골도 있단다.

1만 원하는 파전은 굉장히 두껍다. 별미가 하나 빠졌다. 1만 5천 원 하는 꽃게 정식은 주문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 달콤새콤한 꽃게 정식, 전문점보다 낫다. 알밥 6천 원, 다슬기수제비 5천 원, 콩나물무비빔밥 6천 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오후 8시. 1, 3주 일요일에는 쉰다. 범어사 입구 90번 버스 종점 사거리 2층.